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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터뷰

봄터뷰Q&A

By 2023-02-27No Comments

Q. 선생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정은정입니다.  <나는봄>의 심리치유프로그램인 <시네마테라피>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술로 마음을 치유하는 활동을 하고 있고요, 동시에 영상예술학자라서 대학에서 강의하기도 해요.

영화보기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만큼 자연도 사랑하는 사람이지요.

인간들과의 소통 뿐 아니라 동물, 식물, 무생물과의 소통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고양이와 강아지를 모시고 살아가는 집사이기도 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분들과 소통하는 것도 무척 좋아합니다.

Q. 선생님께서 지원해주고 계신 시네마 테라피에 대해 알려주세요.

A. 시네마테라피는 말 그대로 영화를 도구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소통하고 치유하는 활동입니다.

영화 속 낯선 시공간의 세계를 거울삼아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며 마음의 문제를 풀어가는 작업이지요.

그 과정에서 내면의 상처를 대면하기도 하고 치유하는 법도 배웁니다. 시네마테라피라고 해서 꼭 영화만을 고집하지는 않고 넓은 범주의 영상 매체들을 활용합니다

애니매이션,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 TV 드라마 등 그 내용이 내담자의 마음과 공명할 수 있는 거라면 그 어떤 영상물도 활용합니다.

또 저는 최대한 참여자의 의견을 존중해서 참여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슈나 보고 싶어 하는 하는 영상물 위주로 선택합니다.

제 기준에서 아무리 좋은 작품을 준비한다 해도 참여자의 현재 마음 상태와 공명을 일으킬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거든요.

사춘기 청소년들은 예민하기도 하고 관심을 못 느끼면 금방 지루해하고 산만해져요. 그래서 저는 참여자와 함께 영상물을 결정해요.

이때 사용되는 영상물은 참여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울역할, 정서 자극의 촉매제역할, 또 감정정화를 돕는 보조상담자의 역할도 수행합니다.

영상을 감상할 때는 친구들에게 실제 극장처럼 암전상태에서 가장 집중이 잘되는 편안한 자세로 감상하라고 권합니다.

그러면 참여자들은 안락의자에 앉기도 하고, 바닥에 드러누워 감상하기도 하죠.

그렇게 감상이 끝난 후에는 자유로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마음 속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갖습니다.

또 청소년기는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라 호기심도 많고 새로운 것들을 창작하길 원하죠.

그래서 테라피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다채로운 예술창작활동을 병행할 때가 많아요.

그림그리기, 다큐만들기, 시나리오 쓰기, 뮤직비디오 만들기, 자화상 사진촬영 등 직접 몸을 움직이고 표현하며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합니다.

가령 <우울한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라는 애니매이션을 감상한 이후에 참여자가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친구일 땐 자신만의 고양이 가면을 직접 그려서 써보는 시간을 갖아요.

고양이가 되어 자신만의 상상의 서사를 자유로이 만들어보는 거죠.

가수를 꿈꾸는 친구는 노래를 많이 부를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줘요. 그 노래들을 녹음해 자신이 주인공인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시네마테라피 시간에 감상하기도 하죠.

청소년들은 하루 종일 반복된 일과 속에서 긴장한 채 사는데 이 시간만큼은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 해방감을 느꼈으면 좋겠거든요.

이런 활동을 거듭 하면서 마음의 상처로 지친 청소년들이 자신의 잃어버린 언어를 되찾아 삶의 당당한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더 나은 자신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저는 최대한 시네마테라피 시간에 아낌없이 지지하고 응원해 주고 있습니다.

 

Q. 선생님께서 시네마 테라피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를 알 수 있을 까요?

A. 제 지나간 시간들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제가 시네마테라피라는 개념을 알기 훨씬 전부터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시네마테라피적 활동들을 하면서 살고 있었더라고요.

가령 어린 조카가 울고 있을 떈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사탕같은 걸 주는게 아니라 저는 사탕 대신 찰리 채플린의 코메디 영화를 보여줬어요.

그럼 조카가 어느새 울음을 딱 멈추고 홀린 듯 영화를 바라봤죠. 그럼 저는 조카에게 왜 울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위로하고 달래주곤 했어요.

일상 속에서 위로가 필요한 순간 영화를 도구로 사용하는 일들이 자연스레 되풀이 됬었어요.

어찌보면 그런 경험들이 오랜 시간 제 안에 축적되 쌓여가며 자연스레 이 길로 저를 이끈 것 같아요.

그리고 좀 더 본격적으로는 대학 졸업 후에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며 제가 처음 한 일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그때 영화음악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경험이 저로 하여금 시네마테라피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고조시켰다고 봐요.

당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영화도 엄청 많이 보러 다녔고 선곡을 위해 영화음악도 많이 들었어요. 영화를 좋아했기에 정말 신나게 일했죠.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주 청취층이 청소년들과 20-30대 젊은 세대들이었는데 청소년들이 엄청나게 사연들을 많이 보내왔어요.

지금은 sns로 소통하는게 일상화되었지만 당시는 청취자들이 엽서나 손편지를 직접 정성껏 적어서 보내주셨어요.

좋아하는 영화에 얽힌 추억이나 온갖 고민 등 진솔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었어요.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던 거지요.

그래서 이분들과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 스탭들과 심리학책도 돌려보고 청취자에게 위안을 드릴 수 있는 관련된 좋은 영화들도 발굴해 많이 소개했죠.

그럼 큰 위로가 되었다며 감사의 엽서들을 보내주시기도 했지요. 그때 정말 뿌듯했어요. 당시 저에게 화두는 ‘소통’이었는데 그 중심에 영화가 있었지요.

영화를 중심으로 모인 하나의 공동체 같았어요.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는 영화의 힘을 느꼈어요.

영화라는 매체가 인간 심리에 작동하는 원리도 궁금해졌고 심리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이것이 마음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며  관련 학문들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결국 개편하며 제가 다른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서 공부할 기회가 왔다 싶어 회사에 사표를 내고 몇 달 후 혼자 시네마와 심리학의 나라 프랑스로 날라 갔죠.

신화학자 캠벨이 이런 말을 했죠. “천복을 쫒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장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라고요. 저는 이 말을 품고 살았어요.

가슴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따라 살다 보니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을 하며 사는 삶에 이르게  되었다고 봅니다

 

Q. 청소년 지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이웃집 토토로>라는 애니매이션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와요.

어른들 눈엔 안보이고 주인공 자매의 눈에만 보이는데 이 토토로가 나타나서 도토리 씨앗들이 든 주머니를 자매에게 선물해주는 장면이 있어요.

소녀들은 잔뜩 기대하며 이걸 땅에 심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싹이 트질 않고 변화가 없자 실망을 하죠.

그런데 새벽에 토토로가 나타나 도토리를 심은 곳에서 두손 모아 합장을 하고 주문을 외우니  땅에서 작은 잎이  쑥쑥 자라났고

잎이 풍성하게 드리워진 너무도 크고 아름다운 상수리 나무가 되었어요.

소녀들이 다음날 아침 그곳에 가보니 상수리 나무는  사라졌지만 작은 싹이 올라와 있었어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장면인데, 토토로는 ‘이 작은 도토리 씨앗 속에는 이런 크고 멋진 상수리 나무가 들어있어’라고 소녀들에게 미리 보여준 거라고 봐요.

전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우리 각자의 내면에는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상수리 나무가 될 수 있는 고유한 씨앗들이 발아를 기다리며 들어있다고 봐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성이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꿈틀꿈틀 발아해서 용솟음쳐 올라오려고 하는,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그런거죠.

씨앗에서 상수리 나무가 되기까지 각자가 겪어내야만 삶의 여정이 있어요. 시행착오도 하고, 고난이 닥치기도 하고 먼길을 돌아가게 되기도 하죠.

하지만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고 자신만이 오롯이 겪어내고 걸어가야만 하는 여정이죠.

그 여정에서 누군가 보이지 않는 이 씨앗을 알아봐 주고 응원과 믿음의 눈길로 따뜻하게 바라봐 준다면 정말 좋겠지요.

너무도 행운인 것이 저에겐 성장 과정에 저를 그렇게 바라봐 주는 존재가 있었어요. 저도 청소년들을 그렇게 바라보고 싶어요.

그래서 공부를 못하거나 좋은 대학에 못 가게 되었다고 해도, 또 인생이  암울하다해도 낙오자나 실패한 인생이 전혀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절망 속에서도 늘 대 역전이 일어나는 법이거든요.

<출처-https://m.blog.naver.com/PostView.>

 

Q. 시네마치료 진행 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을까요?

A. 시네마테라피는 영상물을 감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영상물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해요. 후자의 사례 중 하나에요.

예전 저의 강의를 듣던 제자 중 한명이 어느 날 저를 찾아와 마음에 매듭짓지 못한 응어리진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됬어요.

이 친구는 중학생 때 반항하느라 부모님과 대화도 잘 안하고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컸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날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가 크게 나는 바람에 이 사고로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게 됬어요.

이 친구는 부상을 입은채 혼자 살아남게 됬고요. 이 친구는 졸지에 고아가 되어 친척집을 전전하며 고달픈 인생살이를 하게 됬습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열심히 공부해 대학생이 되었는데 늘 마음 속이 답답하고 슬픔과 우울,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 후회 등이 반복적으로 올라온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친구에게 부모님과 채 하지 못한 작별인사를 영화로 만들어 보라고 권했어요.

결국 이 친구는 부모님과 살았을 때 가장 속상했던 순간들,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 부모님께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담아 영화를 만들었어요.

영화를 발표하는 날 수강생이 대략 백명정도 됬었는데 불끄고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여기저기서 훌쩍이며 우는 소리들이 들려왔어요.

다들 각자 자신들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울면서 영화를 봤던 거지요. 특히 앤딩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스크린에 연출자가 생전 부모님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채워졌고 연이서 수많은 익명의 가족사진 이미지들이 흘러갔어요.

알고 보니 수강생들 전원의 가족사진들 이었어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었지요.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영화를 본 친구들이 박수 갈채를 보내며 연출자에게 잘 자랐다고 격려해 줬어요.

연출한 친구는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고요. 다른 친구들이앞에 나와 안아주며 같이 울었지요. 치유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어요.

연출한 친구에게는 영화를 만드는 전 과정이 부모님과의 작별인사였고 애도 과정이었지요. 영화를 본 친구들도 함께 이 애도에 동참했고요.

모두들 영화를 보며 자신과 부모님의 관계를 되돌아봤지요. 저도 그랬고요. 감동적이었고 정말 잊혀지지 시네마테라피였어요.

Q. 나는봄에서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A.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아담한 이층집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건 고양이 집과 그 앞에 놓인 밥그릇이었어요.

고양이 집사인 저에겐 정다운 풍경이었지요. 반가왔습니다.

‘아, 이곳은 청소년들뿐 아니라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길고양이들도 품어주는 곳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온기를 느껴졌어요.

정원 한 곁의 아담한 등나무 벤치, 햇볕 아래서 일광욕을 즐기며 낮잠 자는 고양이들, 햇살이 아름답게 들이치는 주방 공간엔 늘 푸짐한 음식과 맛있는 냄새가 그득했고요.

햇살이 들이치는 창가 옆 둥근 테이블에 청소년들이 삼삼오오로 앉아 평화로이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영화 속 장면처럼 다가왔어요.

시네마테라피를 진행하는 공간도 청소년들이 좋아할만한 아늑한 공간인게 마음에 들었어요.

작은 극장 같았어요. 이곳에서 청소년들이 영화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고 실컷 뒹굴기도 합니다.

나는봄은 공간 구석구석 이곳에 계신 선생님들의 정성과 사랑이 세심하게 베어있어요.

선생님들은 봄햇살처럼 모두 다정다감하고 매력적시고요. 이름처럼 나는봄은 봄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공간이에요.

저는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많이들 오셔서 맛난 음식도 먹고, 영화도 보고, 친구들도 사귀고, 이야기도 많이 하며 지지고 볶으며 생의 에너지를 충만히 받아갔으면 좋겠어요.

Q. 시네마치료를 진행하면서 나는봄 이용자만의 특징이 있었을까요?

A.나는봄 시네마테라피에는 관계 속에서 다양한 폭력을 경험하고 오는 청소년 친구들이 많아요.

그래서 마음 속에 상처들이 있지요. 그런데 그 상처를 바라보는게 너무 끔찍하고 두렵다보니 꾹꾹 짓누르거나 감추거나 외면한 채 살고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나를 찾기 위해 가장 우선 해야할 점은 ‘나한테 가장 큰 상처가 있는 자리가 어딘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상처는 우리를 괴롭히려는게 아니라 발견되어지고, 귀 기울여지길 바라거든요. 어떤 식으로든 신음소리를 내며 나에게 신호를 보내게 됩니다.

그 상처는 또 정체성과 연결이 되어 있어요. 내가 누구인가를 알려고 할 땐 제일먼저 그 상처난 자리를 들여다봐야 하지요.

칼융이라는 정신의학자가 이런 말을 했지요 “당신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을 찾아라. 진정한 성장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라고.

시네마테라피에 참여하는 나는 봄 친구들이 자신의 상처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처음엔 두렵지만 천천히 할걸음씩 떼면 됩니다.

Q. 선생님의 사춘기는 어땠나요?

사춘기때 저는 잘 하는게 별로 없고 열등감이 컸던 아이였어요. 공부도 그다지 잘하지 못했고요. 부모님께 반항도 좀 했어요.

저는 자유로운 기질을 갖고 태어났는데 학교나 집에서 하기 싫은 것들을 자꾸 강요당하는 기분이 들어 제 본성이 억압당하는 것 같았거든요.

특히 고등학교 땐 입시지옥에서 인생 최고의 암흑기를 보냈죠.

폭력적인 선생님들이 몇분 계셨는데 밤늦게 자율학습하다가 조는 친구들 등뒤로 몰래 다가가 등짝을 매섭게 후려쳐 공격하기도 했고

어쩔 땐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보는 가운데 한 선생님이 학생이 쓰러질때까지 심하게 때리기도 했어요. 이런 폭력도 너무 싫었어요.

고2 때는 학교에서 선배 한명이 자살하기도 했고요. 오래 전 <여고괴담>이라는 공포영화가 시리즈로 나와 흥행에 성공했는데 픽션영화였지만 사실 현실을 반영한 거였어요.

학교 분위기가 흉흉했고 아침마다 일어나 학교간다고 생각하면 암울한 기분이 들었죠. 그런데 니체가 말했던가요 “운명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두었다”고요.

그 시기 저에게도 행운이라 부를 만한 저를 숨쉬고 견디게 해주는 것들이 있었어요.

우선 유머러스한 단짝친구가 늘 제 옆에 있었어요. 고1이 된 첫날 교실에서 처음 만났는데 제 앞자리에 앉았된 아이였죠.

그런데 얌전해 보였던 이 친구가 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죄다 유머와 풍자로 승화시키는 놀라운 재주를 타고난 만담가였던 거예요.

이 친구가 인상쓰며 살고있던 저를 등하교 시간에 계속 웃겨줬어요. 웃으니 공기가 바뀌더라고요. 저한텐 행운이었죠.

또 제 삶에 또다른 행운은 멋진 노래들과의 조우였어요. 음악 듣는 것이 정말 좋았어요. 틈만 나면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노래들을 들었지요.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같은 노래들을 듣다보면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이 다 사라지고 가슴이 뻥 뚫리며 좀 더 견뎌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이 저의 비좁은 마음을 활짝 열어준 거죠. 아마 그때 저의 뇌파를 측정했다면 알파파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사춘기 시기 뿐만 아니라 저의 삶에 있어 인생 최고의 행운이자 복은 제가 말썽을 피워 부모님께 혼나도, 공부를 못해도,

제가 어떤 모습이든 언제나 한결같이 저를 믿음의 눈길로 바라봐 주신 존재가 제 곁에 계셨다는 점이에요. 바로 저의 친할머니세요.

저에게 늘 너에겐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고 말씀해주시며 저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해주시고 무한한 사랑으로 대해주셨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할머니의 믿음이 저를 성장시키는 촉매역할을 했다고 봐요. 할머니의 눈길 자체가 제겐 축복이었지요.

저의 영원한 멘토이자 소울메이트세요. 이런 분이 제 할머니셨다는 점은 제 인생최고의 선물이자 행운이었다고 봐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제 마음 속에선 늘 무한한 사랑의 모습으로 살아 계시지요.

 

Q. 선생님의 삶의 영향을 준 십대시절 영화가 있었나요?

저에게 영향을 준 영화들이 많이 있는데 유독 저의 십대 시절에는 영화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더 어릴 적 저의 유년기의 단편적인 희미한 기억들 속에는 잊혀지지 않는 영화 속 이미지들이 박혀 있어요.

이 장면들이 제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해요. 바로 영화 <킹콩>과 애니매이션 <프란다스의 개> 의 장면들입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이 둘을 비슷한 시기에 봤던 것 같아요. <킹콩>에서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는 마지막 장면이에요.

킹콩이 사랑하던 여인을 바라보며 온몸으로 총알을 맞으며 죽어가는데 이때 화면을 가득 채우던 킹콩의 슬픈 얼굴과

심장박동 소리가 서서히 멈춰지며 죽어가는 모습이 너무도 슬프고 강렬하게 남았어요.

그리고 <프란다스의 개>에서는 파트라슈가 심하게 학대당하고 버려지는 모습, 추운 겨울 성당 안에 쓰러져있는

네로를 파트라슈가 찾아내 함께 루벤스의 성모마리아 그림을 보며 꼭 끌어안은 채 얼어 죽어가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아요.

그때 정말 마음이 정말 미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던 것 같아요.

마음이 너무 아프고 저려오는데 데 이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며 한 3일 간은 몸에서 열도 나고 아팠던 것 같아요.

그때 ‘동물들도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는 존재구나, 사랑도 느끼는구나, 동물도 마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제 무의식에 확실히 각인됐죠.

그로부터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갔는데 지금 제가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보면 당시 그 영화들을 보며 강렬하게 느꼈던 생각과 감정대로 살고 있는 거예요.

마음속에 박힌 장면들이 무의식적으로 제 인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거죠. 동물들의 겪는 고통에 민감하고 동물들을 존재로 대하게 되거든요.

 

Q. 앞으로 나는봄에서 시네마테라피 지원을 받게 될 이용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

같이 영화 봅시다. 언제든 편한 마음으로 시네마테라피에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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